아·쓰·남 이다.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남정네’ 라는 뜻, 되겠다. 장작을 팰 줄 아나, 새끼를 꼴 줄 아나, 똥지게를 짊어질 줄을 아나. 그야말로 당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없다. 때문에 부인인 홍심에게 온갖 구박을 다 당한다. 이 느낌 몹시 생소하다. 나는 절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뭐지?
그렇다. 원득이는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외모헌칠하고 문무겸비한데다 ‘텐-텐-엑스텐’에 빛나는 활쏘기 신궁 타이틀까지 거머쥔 완벽남!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왕세자 이율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결코 행복한 세자가 아니었다. 문文과 무武에 능통했고, 조강∙석강∙야대∙회강을 거르는 법이 없었으며 일거수일투족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세자였으나 그는 궁 안에서 사는 모든 날들이 불편했다. “지금 나만 불편한가?”를 달고 살던 이 불편 세자는 어느 날부터 진짜 불편해진다. 나날이 심해지던 흉통! 그것은 누군가의 독살 시도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살해하려던 배후를 찾아냈으나 단죄할 기회를 놓친다. 살수의 공격을 받고 치명상을 입은 뒤 저도 모르는 새 원득이가 되는 바람에.
그는 세자시절 자신이 내렸던 ‘이 나라 원녀 광부를 당장 혼인시키라는 명’에 따라 혼인을 안 하면 큰 일 치르게 생긴 노처녀 홍심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첫눈에 반해 쫓아다녔다는데... 그럴 리가! 드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도 척척 해냈다는데... 그럴 리가! 홍심은 걸핏하면 도끼눈을 한 채 낫을 치켜들고는 온갖 잡일을 부려먹는다. 조선 팔도에 이런 악처가 또 있을까 싶지만...이상한 건 홍심에게 근사한 낭군으로 인정받고 싶어진다는 것.
새록새록 부부지정이 싹트는 동안, 원득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한다. 나는... 세자다! 그리고 나에겐 이미... 빈이 있다! 구중궁궐로 돌아가 다시 왕세자의 자리에 앉았으나 그는 홍심과의 사랑을 이룰 수도 없었고, 복수를 완성할 수도 없었다. 불행히도 자신이 죽기 전 벌어진 그 일, 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홍심 (여, 20대 중반, 본명 윤이서)
신량역천 (身良役賤, 양인 신분이면서 천역에 종사하던 부류) 인 홀아비 봉수군 (봉화를 올리던 사람) 의 노처녀 외동딸로 송주현 최고령 원녀다. 지독한 가뭄으로 끼니 걱정 하느라 피가 말라가는데 난데없이 혼인을 하란다. 왕세자가 비 안 오는 책임을 물어 원녀∙광부를 반드시 혼인 시키라! 명을 내렸단다.
헐... 왕세자 걔, 미친 거 아냐? 내가 혼인하면 비가 온다는 거야? 내가 뭐... 신神이니? 도깨비니?
억지혼인을 거부하다 현감에게 끌려가 장 백 대를 맞고 사망하게 생긴 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내가 있다! 원득이다! 원득이가 돌아왔단다! 그녀는 눈물로, 지가 원득이 인 지 조차 모르는 원득이와 원치 않는 혼인을 하게 된다. 빠져들 것 같은 그윽한 눈, 꿀 떨어질 것 같은 음색, 귀티 나게 생긴 얼굴에 섬섬옥수까지... 보고 있으면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 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모습을 보면 욕이 방언처럼 터져 나온다.
허우대 멀쩡한 사내가 밥값은 해야지? 우라질! 밥만 축낸다. 짚신이라도 삼아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육시랄! 닷 푼 축낸다. 이건 더러워서 불편, 저건 냄새나서 불편, 그것은 괜히, 느낌적인 느낌이 불편하단다. 왕자병 제대로 걸린 이 사내, 당장에라도 내쫓고 싶지만, 보면 볼수록 심상치가 않다. 무예 출중한 건 물론이고, 언문이며 한문이며 글짓기 솜씨마저 예사롭지 않다.
이 사내는 분명, 원득이가 아니......면 어때?
홍심은 그의 출중한 노동력을 착취해 돈이라도 왕창 벌어볼 요량이었다. 조선 최초의 해결완방(말하자면 흥신소)을 차려 원득을 온갖 일에 부려먹는다. 하지만 차츰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원득이 좋아진다. 진짜 원득이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만큼. 숨기고 있던 자신의 과거가 모두 들통 나도 괜찮을 만큼.
‘철 없는 고딩’의 ‘대기업 간부 입성기’ ! 떠밀려 들어간 무서운 정글에서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쫓다!!
살벌한 2014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적절한 전략과 처세는 필수다. 여기, 뜻하지 않게 어른들의 세계로 그 무서운 정글로 밀려들어간 단순무식한 고딩이 있다.
그런데 처세를 모르는 그가, 밀당을 모르는 그가, 단순함 하나로 조직에서 우뚝 서고, 진심 하나로 사랑을 쟁취한다. 모두가 그를 원한다.
때때로 단순함이 복잡함을 이긴다.
조직사회에서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처세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간과하기 쉬운 진리가 어쩌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세상이 어쩌면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쩌면 정글이 아니라 부드러운 카스테라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쩌면 짜릿하고, 달콤하고, 꽤 살만한 곳일지도..모.른.다.
이민석(18세. 풍진고 2학년 하키부 공격수)
“형 지금 제정신이야? 형 대신 회사에 다니라니? 나 고딩이거덩! 것두, 오전수업 졸구 오후엔 뭐빠지게 훈련해야되는 하키선수거덩!!“
명문 풍진고 하키부의 최전방 공격수다. 뺀질뺀질하니 잘생긴 얼굴에 팔등신 꿀복근까지, 완벽한 하드웨어를 소유. 그 미모에 지성까지 겸비하였으면 얼마나 금상첨화였겠냐만은.. 하늘은 공평하다. 단순무지한 소프트웨어로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욱하는 성질에 타고난 승부근성은 공격수에 최적격인 파이팅을 자랑하지만 그것이 또 제 발목을 잡아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순식간에 흥분게이지가 상승하는 스타일이란 말씀. 그것이 또 받쳐주는 외모와 함께 그 아이의 매력이 되어 교내에 꽤 많은 여학생 팬을 보유하지만 민석에겐 그림의 떡. 민석의 스토커 정유아 때문이다. 자칭 민석의 마눌이라는 유아는 껌딱지처럼 민석곁에 붙어 일미터 전방으로 여자애들이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철벽방어를 한다. 그런 유아를 민석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민석에게 그저 유아는, 철없는, 그러나 미워할수 없는 ‘친구’다.
그리고 민석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또 한 사람. 민석과는 아홉 살 차이가 나는 친형, 형석이 있다. 민석과는 달리 뛰어난 수재로 일찌감치 독일 유학길에 올라 직장까지 터를 잡더니 갑작스레 한국 모 기업에 스카웃되어 온다며 연락을 해온다.
드디어 디데이, 형의 귀국날. 온다던 형은 오지 않고 연락조차 되지 않더니 그날 새벽. 어둠을 가르고 벨이 울린다. 발신자는 바로 다급한 목소리의 형 형석. ..긴 얘기 못한다..내 대신 무조건 내가 갈 회사인 컴포Inc로 가라.. 가서 당분간만 내 행세를 좀 해라..안그럼 내가 죽는다..
고삐리인 내게 형 대신 회사로 가라고? 이 무슨 황당해괴망측한 시츄에이션이냐? 형 목숨이 달렸다니 무시하지도 못하고, 시키는데로 하자니 감당이 안되겠고. 에라 모르겠다, 일단 형부터 살리고 보자..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데..
정수영(27세. 컴포Inc 리테일팀 계약직 2년차)
“..이 징글징글한 계약직..이 징글징글한 짝사랑..내 인생는 왜 늘 모자라기만 할까? 그.런.데..이 남자랑 있으면 내가 좀 똑똑해진다. 좀 괜찮은 여자가 된다. 이남자..마술산가?
2년째 계약직 꼬리를 떼지못한 서글픈 비정규직 여사원. 번지점프장 하는 엄마 일 도우며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서울로 상경했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서울엔 웬 인재가 이리도 많은지..정규직으로 들어오는 여사원들의 스펙만해도 기본이 석사에 이개국어 이상 외국어를 줄줄..아니 언제부터 지들이 딴나라 말을 쏼라쏼라하고 살았어..내 나라에 대한 존심과 자부심이 있어야지말야 사람이..라고 큰 소리 치기엔 그녀가 가진 것이 너무 없고 초라했다. 그저 주는 월급 받고..월세 내고..하루하루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그녀 회사생활의 유일한 오아시스는, 2년째 짝사랑중인 프로젝트 본부장 유진우. 최연소 본부장의 타이틀을 거머쥔 실력파에 냉철한 카리스마에 훈훈한 외모까지 똑바로 눈 박히고, 제대로 머리 달린 여자라면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슴에 이는 광풍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사고를 치고 마는 수영. 회식자리에서 진우에게 고백을 하지만 가차 없이 까이고 만다.
자신을 소 닭보듯하는 진우에게 상처받아 짝사랑의 마음조차 점점 지쳐갈 즈음. 듣보잡으로 등장한 좀 묘한 상사 리테일 본부장 이형석(사실은 민석). 알맞게 잘 그을린 탱탱한 피부에, 뽀송뽀송한 솜털이 가시지 않은 동안의 남자. 성질 급하고, 일은 설렁설렁하면서 큰소리나 쳐대고, 유난히 수영에게 깐족거려 미운놈, 미운놈, 해대던 이 남자에게 언젠가부터 자꾸 시선이 간다. ..뭐야! 나 알고보면 남성편력이 화려한 여자? 이 남자 저남자, 골라먹는 재미로 마음부터 주고보는 잡식성 하이에난가? 나..사는게 살짝..재밌어지려고 한다.
그녀는 당돌한 고2 동생 유아와 둘이 산다. 아버진 일찍이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닌 고향 가평에서 작은 번지 점프장을 운영하신다. 그냥 엄마 옆에서 점프조교나 하고 있다 시집가라했지만, 그래도 엄마. 내 인생을 두고도 한번은, 이 번지점프를 해봐야 하지 않겠어? 혹시 알아? 뛰어 내려 보니 생각지도 않은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지. 고집 센 회장님 눈에 들어 양녀가 된다던지, 백마 탄 왕자님이 짠하고 등장한다던지, 평범한 내 인생에도 짠하고 볕들날이 있을지.....라 생각했건만......